"코로나 이후 변화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은데 그 작은 변화에만 집중하다보니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들이 망각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과학기술자문회의를 이끌어 온 염한웅 부의장. 과학기술계의 '미스터 쓴소리' 답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코로나' 논의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세상은 코로나로 많이 변할 것이라고 하지만 코로나사태 이전에 우리가 안고있던 본질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염 부의장의 분석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에 인간이 펜데믹으로 감염되는 이유, 즉 '생태적 파괴'에 대한 논의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염 부의장은 정부 연구개발(R&D)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고 평가했습니다. 대신 정부와 민간 R&D의 명확한 역할 구분을 제시했습니다. 미래 신산업은 투자 여력이 강한 민간 기업에 맡기고,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공 R&D에 집중하자는 얘기입니다.
염 부의장은 과학기술정책에 있어 부처와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뼈있는 지적'도 내놨습니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 프로젝트에 자문회의의 의견이 '패싱'되고 있는 점에는 섭섭함도 내비쳤습니다.
※과학기술자문회의는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중장기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대통령 자문기능을 수행하는 과학기술계 최고의 기구입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함께 헌법상 3대 자문기관이기도 합니다. 의장은 대통령이, 부의장은 염한웅 포항공대 물리학과 교수가 맡고 있습니다.
다음은 염 부의장과 일문일답.
-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역할을 소개한다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대통령에게 '과학기술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이렇게 폈으면 좋겠습니다' 과학기술계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서 자문을 드린다. 또 각 부처별로 연구개발(R&D) 예산을 세우는데 잘 편성됐는지를 자문회의에서 심의한다. 종합적으로 정책을 자문하고, 잘 실행되는가를 지켜보는 기관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3기까지 연임했다. 성과를 꼽자면?
▶기존에는 공무원 중심으로 과기 정책들이 이뤄졌는데 이 프로세스를 뒤집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사람중심의 정책'을 표방한다. 과학기술계로 보자면 연구자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결정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R&D 연구혁신법'도 지난 국회에서 겨우 통과됐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을 보면 기초가 너무 약하다. 예로 AI가 뜨는데 AI 전문가를 찾으면 없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부산을 떨게 아니라 기초가 튼튼해야 된다. 현 정부에서는 기초연구 예산을 5년동안 점차 두배로 늘리는 게 목표인데 늘어나는 보폭으로 보면 이만큼 확대하는 나라가 없다.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상당히 광범위하다. 정부 R&D 투자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최근까지도 정부의 투자는 전부 먹거리 창출이었다. 여태까지 조선업, 반도체, 화학, 철강 등등 이런 산업으로 국가가 성장해 왔는데 '앞으로
먹거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국가가 한 것이다. 이것은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한 70-80년대 고도성장기 산업정책이다. 과학기술계에 대한 요구는 '차세대 먹거리가 뭐야, 반도체 다음엔 무엇을 먹고 살거야' 이런 니즈가 있었다. 국가 전체 R&D를 보면 80~90조원이 투자되는데 놀랍게도 3/4 민간기업 투자다.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미래에 투자할수 있는 게 수천억 정도 되는데 삼성, LG, SK가 이미 수십조를 투자하고 있다.
-정부와 민간 R&D의 역전인가?
▶미래 신산업, 새로운 먹거리는 민간에서 만들어내고 있다. 민간이 투자 여력이 있고, 인적 역량을 갖고 있다. 저는 정부와 민간의 역할이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민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한다. 민간은 돈이 안되니깐 기초(연구)는 안한다. 또 하나는 공공 R&D라고 부르는데 감염병, 미세먼지, 기후변화 대응, 예를 들어 플라스틱 페기물은 어떻게 처리할거냐. 가습기 살균제같은 독성물질은 어떻게 방지할거냐, 이런 것은 기업에서 하지 않지만 국민들에겐 중요한 어젠다다. 정부 R&D에 25조 원을 투자하는데 여기에는 1조원정도 밖에 투자를 안한다.
-공공 R&D 투자가 부족하다는 얘기인가.
▶국민 생활과 밀접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투자하자는 게 공공 R&D다. 아직까지는 이 부분이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안에서 틀이 작고 이해도도 낮다. 백신도 얼마만큼의 R&D 투자를 했는지 돌이켜보면 정말 보잘것 없는 투자를 해왔다.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R&D 투자를 2천억 원씩 하는데 백신은 5백억 원을 한다. 중요한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 아닌가. 미래 먹거리, 먹거리 하지만 민간 기업이 정부보다 더 잘할수 있고, 역량이 있다. 정부가 어떻게 삼성전자를 뒷받침하는가. 정부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 이건 모든 분들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 R&D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미인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연구들을 추려보니깐 25조원 투자한다고 하면 2조원 정도에 불과하다. 이것은 10%에 머물 일이 아니다. 주력 산업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이런 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R&D에 수조원의 돈이 들어간다. 과연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라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있는가. 저는 아니라고 본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소재부품장비, 이른바 소부장 사태가 있었다. 소부장 R&D 투자는 어떤가?
▶글로벌 벨류체인, 공급망이 여러가지 요인으로 무너질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봤다. 일본이 이상한 정책을 펼친 것도 있지만 미중 간 분쟁을 일으켜서 우리가 또 다른 문제를 떠안을수도 있다. 또 지구의 한 부분에서 감염병이 돌아서 공급망이 무너지면 우리가 공급을 못 받게되는 불안정성이 계속 증가한다. 그래서 정부정책이 한시적으로 되면 곤란하다. 대기업들은 지금 당장 수입해서 잘 쓸수있으면 노력을 안하니깐 정부가 챙기는 게 맞다. 작년에 20조원 R&D 예산을 기획했는데 소부장 사태로 24조원, 20%가 늘었다. 굉장히 큰 단위의 투자인데 사실 액수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내용이 확보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국민 세금이 4조원이 들어갔는데 예산투입은 6개월밖에 안되서 아직 검증할 단계는 아니다.
-성과는 언제 학인할 수 있나.
▶장기적으로 본다. 일본에서 수출제한조치를 한 3대 품목(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은 이미 가시적 성과가 있다. 대부분 대체할 수 있는 기술력, 공급력을 확보한 것 같다. 100대 품목 중에 1~2년 단위, 또는 5년이나 10년 단위의 로드맵을 만들었다. 이 틀이 잘 이뤄지고 있는가를 보는데는 5년 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일상을 바꾸고 있다. 부의장이 보는 포스트코로나 시대는 어떤 모습인가.
▶'위기 상황에서 위기 다음에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준비할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예언자적 식견이 필요하다. 사견을 전제로, 저는 우리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로나가 장기화될 수 있지만 어쨌든 감염병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본다. 큰 변화를 야기할 것인가는 과거에 크고작은 감염병 사태를 봤을 때 사람들이 원래 자리로 잘 돌아간다는 교훈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일상이 쉽게 빼앗길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떤 의미인가.
▶코로나가 가지고 올 크고작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어떤 분들은 이것을 새로운 비즈니스 찬스라고 얘기하고, 또 다른 분은 국가적 위상이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말하는데 그런 것들도 금새 잊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계가 높이 평가했다는 인상은 남겠지만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역량이 갑자기 좋아졌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안고있는데 코로나로 우리 경제가 갑자기 저성장에서 고성장으로 갈 것이냐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개인적으로 이 논의가 섭섭하다.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난제들이 있는데 여기에 기울여야 하는 관심을 희석하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이후 경제가 변화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은데 그 작은 변화에 집중하다보니 우리가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들이 망각되고 있다. 새로운 코로나가 새로운 동물에 기인해서 올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예측하고 있다. 그럼 근본적으로 생태적 파괴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안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에 비즈니스 찬스가 있어서 몇조원의 마켓이 열릴수는 있겠으나, 코로나 이후에 다른 감염병이 도래해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손해를 생각하면 그 이득은 아주 작은 것이다.
-국내에서 코로나 백신이 개발될 가능성은 없는가.
▶확률이 높지 않다고 본다. 국내 바이오산업, 백신 개발 역량이 과거처럼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선진국들 역량에 필적할 수 있느냐, 백신 후보로 테스트되는 게 100여개인데 국내에서 3~4가지 후보 물질들이 있다. 이 중에서 성공을 말하는 것은 굉장히 희망적인 관측이고 앞서나가는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계속 새로운 감염병이 터져나올텐데 우리가 100개 중에서 4개의 후보물질을 만드는 역량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바이러스 연구소, 감염병 대한 연구센터 등등 복지부와 질본은 물론 과기부에서도 논의되고 있다. 앞으로 10년, 20년 보고 준비해야되는데 그 과정을 자문회의에서도 들여다보고 싶다.
-정부가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뉴딜과 그린뉴딜, 두 개의 축인데 자문회의에서 집중하는 분야가 있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뉴딜정책은 자문회의의 자문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정 부분 이해가 간다. 일단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자문회의의 의견을 구하면 수개월정도 시간이 걸린다. 또 하나는 뉴딜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정책이다. 댐을 지어서 인력들이 현장에 와서 공사를 해야하는 것이다. 뉴딜 자체가 과학기술 R&D와 직접적으로 영향을 갖긴 어렵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과학기술이 필요하지 않는가.
▶대통령이 추구하는 뉴딜은 고차원적이다. 일자리를 만들되, 우리 경제가 변화해야 하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성을 타고 경제를 변화하는 동력으로 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기왕에 일자리로 만들거면 이런 새로운 일자리에 착목한 것이다. 우리와 접점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는데 펼쳐지는 것을 보니 과학기술과 관련된 내용들이 상당히 들어있다. 그 생각을 제대로 담으려면 과학기술적인 내용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헌데 그런 정도 깊이의 정책까진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본다.
-자문회의의 권한은 높아졌다고 보는가.
▶과거에는 R&D가 여러 부처로 나눠져 있었다. 과기정통부도 있지만 산업부, 복지부, 환경부, 국방부 등등 각각의 부처를 아우르기 위해서 강한 컨트럴타워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계속 있었다. 현 정부들어 자문회의가 그 역할을 맡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과학기술기본법도 고쳤고, 예산정책을 심의하는 심의기구까지 합쳐서 자문회의가 큰 기구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역대 가장 강력한 자문기구다. R&D 정책 전체를 조율해서 한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과기관계장관회의가 있다.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는건가.
▶저희로서도 어려운 문제이다. 정부가 출범할 때 자문회의를 통해서 부처간 조율이 되도록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긴급한 사태들이 일어나다보니 과기관계장관회의가 만들어졌다. 관계장관회의 장관들이 자문위 구성원들이기도 하다. 이 틀 안에서 해도 된다고 본다. 또 관계장관회의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공유가 돼야 한다.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과 그 쪽이 생각하는 방향이 잘 어우러져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에게도 말씀드렸다. 제일 중요한 것은 각 정책을 추진하는 사람 간의 소통인데 아직까지 부족하다. 현 정부의 문제라기보다 기존의 관행일 수도 있다. 테이블에 의제를 올려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틀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을 올려놓길 원한다.
-내년도 R&D 예산은 어느 분야에 집중되는가.
▶지난해 R&D 예산이 24조 원인데 올해는 25조 원을 넘는데 국회 승인이 남아있다. 예산편성의 기조는 두 가지다. 기초연구나 인재육성 등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틀을 잘 유지하자는 게 하나이고. 여기에 더해 감염병과 소부장 사태 등 현재 국가적 위기상황을 잘 극복할수 있는 연구, 두 트랙이다.
-21대 국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원론적인 부분을 부탁하고 싶은데 과학기술계의 대표성이 너무 약하다. 정부 또는 저희가 계획하는 여러가지 정책이나 새로운 법안들이 많은데 국회에서 잘 반영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저희가 잘 설득해야겠지만 국회에서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필요한 입법과제는 없나.
▶지금은 과감하게 계속 투자를 유지해나가는 지속성이 담보되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노벨상과 같은 필적한 결과들이 많이 쏟아져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꾸준히 투자해갈수 있느냐, 이런 저력이 필요하다. 5년 정도 했는데 별로 나온게 없네? 또 정부가 바껴서 '우린 별로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런 식의 판단은 곤란하니깐 꾸준히 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최근 자문위원들이 충원됐다. 어떻게 운영해 나갈 계획인가.
▶자문회의는 국가의 과학기술 정책이라고 하지만 경제, 보건(감염)분야, 국방 등등 모든 분야와 연결된다. 특히 이번에는 감염병이 중요한 이슈라서 백신 전문가도 모셨고. 또 경제 부분을 아우르기 위해 경제전문가도 왔다. 좋은 정책을 위해 분야를 아우르는 많은 분들을 모시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