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 : Center for Artificial Low Dimensional Electronic SystemsRegDate : 2019-07-17Hit:4384
포항은 EUV용 감광액 국산화 전초기지
포항 방사광가속기에 日수출규제 포토레지스트 테스트설비 이미 구축 한국서 유일한 장비
중장기 국산화 기대
원호섭 기자
입력 : 2019.07.15 17:47:29 수정 : 2019.07.16 16:14:10
포항 방사광가속기 내에 설치된 EUV용 PR 테스트 실험 장치. [사진 제공 = 포항가속기연구소]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지난 4일부터 반도체 생산 핵심 소재로 불리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와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 포토레지스트(PR·감광액),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입이 엄격해졌다.
일본은 반도체 생산 공정에 필수적인 여러 재료 중 EUV PR를 콕 집어 규제 대상에 올렸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EUV를 이용해 선폭 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의 반도체 양산 라인을 완공해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EUV를 이용해 반도체를 만들 때 사용하는 PR, 즉 EUV용 PR가 사실상 100% 일본산이라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EUV 라인을 갖고 있지만 생산을 위한 설비인 만큼 PR 개발을 위한 테스트로 사용할 수 없다"며 "또한 EUV 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수백억 원에 달하는 설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도체 소자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미세 회로를 만든 뒤 여기에 전류를 가해 정보를 저장하거나 가공하는 데 쓰는 장치로, 현대 정보사회의 물질적 기반으로 불린다. 미세 회로는 ㎚ 크기에 해당하는 만큼 손이나 기계로 깎아서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반도체 회로를 만들 때 실리콘 웨이퍼 위에 감광제인 PR를 올려둔 뒤 회로 패턴을 띠고 있는 `마스크`를 올린다. 그 위에 빛을 쪼이면 마스크를 올려놓지 않은 부분의 PR만 단단하게 굳는다. 이어 마스크를 제거한 뒤 PR가 붙어 있는 웨이퍼를 불화수소에 노출시키면 실리콘 웨이퍼가 깎이면서 미세한 회로가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은 더 미세한 반도체 회로를 만들기 위해 웨이퍼에 점점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해왔다. 현재까지 가장 작은 선폭의 반도체 회로를 만들 수 있는 빛이 바로 EUV다. EUV 파장은 13.5㎚로, 기존에 사용하던 `아르곤 플로라이드(ArF)`가 내뿜는 빛 파장의 10분의 1이다.
한국에도 EUV용 PR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 포항에 있는 방사광가속기다. 김재영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위원은 15일 "1994년 건설이 완료된 포항 방사광가속기는 적외선에서 엑스선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빛을 발생시켜 각종 연구개발에 사용하는 시설"이라며 "EUV PR 개발에 필요한 강력한 세기의 EUV를 공급할 수 있는, 한국에서는 유일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부터 포항 방사광가속기에 EUV PR를 테스트할 수 있는 장비가 구축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빔라인을 설치할 때 삼성미래기술육성센터이 재정을 지원했으며 포항가속기연구소 산업기술융합센터가 건설을 마무리 지었다.
김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발생할 줄 몰랐는데 다행히 얼마 전에 미래형 반도체 물질 연구용 빔라인에 EUV PR 테스트 장비 설치가 완료됐다"며 "다만 이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빔타임이 대단히 제한적이어서 다른 실험장비들 사용이 잠시 중단되는 새벽 3~5시를 이용해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EUV PR를 개발하려는 국내 기업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용 빔라인 설치가 필요하다. 한국에 이 같은 방사광가속기가 단 1대 운영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10대 넘는 방사광가속기가 정부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대학에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수십 대에 달한다.
김 연구위원은 "방사광가속기가 없으면 EUV 테스트 라인은 절대 단기간에 구축할 수 없다"며 "과학기술에 먼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일본의 규제 품목에는 `투명PI`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포함됐다. 투명PI란 갤럭시 폴드처럼 접히는 디스플레이 커버로 쓸 수 있는 소재로 폴더블폰 제작시 없어서는 안되는 부품으로 꼽힌다. 현재 삼성전자는 폴더블폰에 사용하는 투명PI를 일본 스미토모화학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스럽게도 국내기업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투명 PI 필름 개발을 시작, 지난 2017년 12월 세계 최초로 연간 100만㎡, 스마트폰 2500만~3000만대에 달하는 투명PI 양산시설을 완공했다. 일본 스미토모화학도 투명 PI를 생산하지만 양산 시설이라기 보다는 파일럿 시설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석 코오롱인더스트리 전사기획담당 상무는 "2000년대 중반 투명 디스플레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PI에서 색을 제거한 투명 PI 개발이 반드시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투명PI를 적용할 수 있는 전자제품은 없었지만 언젠가 폴더블폰처럼 투명 PI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 올 것이라는 생각에 R&D를 시작했다"며 "양산 설비 완공까지 10년의 시간과 1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고 덧붙였다. 투명PI는 폴더블폰 디스플레이 위에 덮는 일종의 커버 소재다. PI소재는 고열, 낮은 온도에서도 버틸 수 있어야하며 디스플레이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20만번 이상 접었다 펴도 구김이 가지 않아야 한다. 또한 디스플레이가 갖고 있는 선명한 화질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만 하는 만큼 개발이 상당히 까다롭다. 작은 면적의 투명 PI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균일한 품질의 PI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양산 개발은 더욱 어려운 일로 꼽힌다. 노정석 상무는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시장을 내다보고 투자한 만큼 `리스크 테이킹`을 감수한 것"이라며 "사업 초기에는 정부의 소재 개발 프로젝트였던 `WPM(World Premier Materials)` 사업도 R&D에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조치로 투명PI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투명PI공급 준비가 완료된 상태라며"라며 "질적으로도 일본과 비교했을 때 절때 뒤쳐지지 않는 품질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